초기 창업가를 위한 마음가짐이란 글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제게는 1억짜리 배움이라 큰맘 먹고 적은 글인데요. 제가 쓴 글 중 아마도 가장 인기가 없는 글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지난 창업을 정리하며 혼잣말처럼 써둔 메모에 가까워 그런가 싶은데요. 아무튼 해당 글은 창업 아이템에 관한 제 나름의 프레임워크를 정리해 둔 것입니다. 그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문제, 해결책, 가능성 세 박자가 맞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건데요. 이 글에서는 ‘해결책’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며 겸사겸사 제 근황을 공유할까 합니다.
제가 지난 세 번째 창업에서 가장 크게 (가장 아프게) 느낀 게 있다면, 제가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창업을 시작하던 2010년 초와 요즘의 스타트업 지형이 꽤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2010년 중후반을 지나며 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 결과 이제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부분의 쓸만한 문제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해결하고 있는듯합니다. 그 해결책이 썩 만족스럽지 못할지언정 이요. 물론 여전히 좋은 문제는 계속 새롭게 등장하고 있고, 또 시장에 여전히 기회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여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업을 시작하는 일의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음은 아마도 사실일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 창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조금 원론적인 얘기로 해결책에 집중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말이 곧 문제보다 해결책을 먼저 생각하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결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저는 좋은 문제를 찾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남들보다 훨씬 더) 좋은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 이유가 있는지를 찾는 게 중요해졌다고 봅니다. 저는 이걸 이 표현을 빌려서 창업자들에게 묻고는 합니다. 우리에게 불공평한 이점unfair advantage이 있나요? 물론, 이건 아주 대단히 새로운 발견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이런 이점을 레버리지 삼아 성공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이점이 없는 스타트업들이 운 좋게 성공하기는 훨씬 더 어려워졌다는 게 요즘의 제 생각입니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경쟁사의 제품보다 사용자 경험이 살짝 더 좋은 제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쟁사 제품에 비해 월 구독 금액이 2배 정도 저렴합니다. 이 스타트업은 성공할 것 같으신가요? 여러분이 VC라면 이곳에 투자하실 건가요? 그렇다면 월 구독 금액이 5배 싸다면요? 심지어는 10배 싸다면 어떨까요? 10배 싸게 팔면 뭘 먹고 사나요? 하는 생각에 판단이 어려우시다면 사용자 경험, 품질, 성능 등으로 바꿔서 생각해도 됩니다. 제가 지난 창업에서 배운 결론은 “무언가가 지금 N배 좋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가치가 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그것이 구조적인 차이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면 지금의 모습은 우연적 현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지금의 좋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상이 아닌, 바로 그 이유 자체에 투자해야 한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창업자는 본인의 시간을, VC는 돈을 말이죠.
저는 이 좋음의 이유라는 것이 곧 불공평한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조적으로 누군가가 다른 누구보다 잘할 수밖에 없고, 결과물이 더 좋을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이유. 이 불공평한 이점은 창업자 혹은 창업 팀이 가질 수도 있고, 사업 그 자체가 불공평한 이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사업 자체가 불공평한 이점을 가지는 경우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사업 구조를 생각해 봅시다. 남들은 다 A → B → C를 거쳐 X를 제공하는데, 우리는 무언가의 방법으로 중간 과정인 B를 제거하여 남들보다 X를 (중간 마진을 제거했기에)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 즉,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가격을 낮춘 게 아니라, 구조적인 차이를 바탕으로 물리적인 절감을 만들어낸 것이죠. 경쟁자가 가격을 따라오더라도 장기적으로 사업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이상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업의 구조를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플라이휠flywheel을 찾아 가속도를 만들어 격차를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크게 벌려야 합니다. 그래서 사업 자체의 불공평한 이점은 결국 돌아가기 시작한 플라이휠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플라이휠에 대한 가설, 실험, 증명까지 모두 포괄해서요.
창업자의 불공평한 이점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를 들어 새로운 SNS를 만들겠다는 두 창업자를 살펴봅시다. 과거 대형 SNS 회사에서 피드 팀을 이끌었던, 대용량 처리에 강점이 있는 개발자 출신의 A씨. SNS를 만들어본 적은 없지만, 본인의 팔로워가 20만 명이 넘는 인플루언서 B씨. 구체적인 계획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투자해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B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B에게는 이 사업에 있어 불공평한 이점이 있습니다. SNS 창업이 실패하는 건 아마도 대용량 처리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콜드스타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그럴 확률이 훨씬 높을 겁니다. 쉽게 말해 대부분의 SNS는 아무도 없는 피드를 기꺼이 보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망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B가 창업을 한다면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창작자 본인이 계속 콘텐츠를 공급하며 본인의 팬을 새로운 SNS로 데려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게 창업가가 가질 수 있는 불공평한 이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생존의 가능성이 10배 높다면 이거야말로 정말 경쟁자가 가장 부러워할 만한 불공평한 이점이 아닐까요?
물론 창업가가 가질 수 있는 불공평한 이점은 여러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내가 이 문제를 정말 오랜 시간 겪어온, 문제 자체의 전문가인가? 그렇다면, 남들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문제가 속한 분야에 있어 최고 수준의 전문가인가? 혹은 내 가까운 지인 중에 그런 전문가가 있는가? 등도 남들보다 훌륭한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불공평한 이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저는 창업자의 개밥먹기dogfooding가 중요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호하지만, 창업자 혹은 창업 팀의 DNA 역시 불공평한 이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명 게임의 문화 승리 느낌?) 가장 보이지 않고, 그래서 가장 약한 것 같지만 사실 가장 강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의 창업자를 누가 이길 수 있을까요? 심지어는 그게 팀 전체가 그렇다면요? 또는 아주 강력한 창업자의 어떤 믿음 같은 건 어떨까요? 그것 또한 불공평한 이점이 될 수는 없을까요?
아무튼 이게 제가 창업 아이템을 평가할 때 해결책 측면에서 가장 집중해서 보는 내용입니다. 창업자와 팀이 불공평한 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사업 구조적인 측면에서 불공평한 이점이 존재하는가? 혹은 둘 다인가? 아직 다루지 못한 불공평한 이점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건 언젠가의 다음 글로 준비해 보기로 하고, 이제 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최근에 저란 사람이 노동자 개인으로서 가지는 불공평한 이점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관점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게 가장 무난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 차원에서 가장 강력한 불공평한 이점은 “남들은 모두 내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논다고 느끼는 그 무언가”를 업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즐기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을 누가 꺾겠습니까? 그랬을 때 그 질문에 대한 제 답은 결국 ‘창업’이었습니다. 아직 살면서 창업보다 더 재밌는 일을 별로 경험해 보지 못한 탓에 창업을 다시 하거나, 창업과 관련된 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평소 구독하던 파운더스토리 뉴스레터에서 아주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건 바로 더벤처스 대표인 Sean의 링크드인 게시글이었는데요. 처음 이 글을 보았을 때 저는 당연히 더벤처스가 투자할 회사를 찾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YC의 Requests for Startups처럼 심사역을 위한 AI를 만드는 회사를 투자하기 위해 찾고 있는 걸로 오해한 저는 재미난 창업 아이디어를 얻을 생각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연락드렸고, 첫 미팅 자리에서 (구직자로서 응당 했어야할 밀당이란 일절 없이…) 조금의 고민도 없이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첫 미팅 자리에서 어렵지 않게 더벤처스가 가진 불공평한 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 VC와는 다르게 반짝이는 DNA 같은걸요. 그리고 제가 이 불공평한 이점을 더 키워서 궁극적으로는 더벤처스가 그리는 플라이휠을 굴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창업할 마음으로 더벤처스에 합류했습니다. 투자는 하나도 모르지만, 이 불공평한 이점을 극한으로 살려서 이곳을 1등 VC로 만들어보려고요.
그 시작으로 AI 심사역이라고 부르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관련 내용은 여러 기사에서 다뤄주셨는데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더벤처스가 운영하는 한 달 단위의 투자 검토 과정을 (이것도 이미 꽤 빠른 수준이라고 생각하지만) 3일로 단축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투자가 필요할 때 3일 만에 연락을 주는 VC라니! 제가 창업자이던 시절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투자사의 모습을 직접 하나씩 구현해 보려 합니다. 이게 제가 상상하는 더벤처스의 불공평한 이점을 활용한 첫 번째 결과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에서 불공평한 이점을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가요?
(광고) 투자가 필요하신 스타트업 창업자 혹은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싶으신 분은 더벤처스로 언제든 편하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저는 "초기 창업가를 위한 마음가짐", "나는 왜 창업을 하고 싶은가?" 모두 너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ㅎㅎ
성현님의 새로운 도전도 응원할게요!